1970년, 술탄 카부스의 오만 르네상스
술탄 카부스 국왕을 빼놓고 오만을 이야기할 수 없다.
1970년까지 오만은 'Said bin Taimur'라는 1인 군주가 다스리는 '은둔국가'였다. 왕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대외적으로 오만을 철저히 고립시켰고 대내적으로 강압적인 통치를 펼쳤다(공공장소 흡연금지, 여성 대학교육 금지 등). 그 결과, 오만은 근대화와 국가발전에 뒤쳐졌다. 1970년까지 오만이 받은 국가발전 성적표는 75%의 유아사망률, 만연한 영양실조, 전국에 단 3개의 학교, 90%에 달하는 문맹률, 어업과 농업에 의존하는 경제였다.
이를 지켜보던 왕자는 아버지에게 개혁과 개방을 요구한다. 하지만 왕자에게 돌아온 것은 아버지의 무시와 가택연금이었다. 참다못한 왕자는 결국 아버지를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킨다. 왕자는 아버지를 몰아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는데 그가 바로 '술탄 카부스'이다. 이때가 1970년 7월 23일인데 이때부터 오만의 르네상스가 시작된다. (오만에서는 7월 23일은 Renaissance Day로 기념한다.)
술탄 카부스는 개방과 평화를 표방하며 국가발전을 시작했다. 먼저 경제를 개방하고 자원(석유, 천연가스)을 수출하여 자본을 축적했다. 그리고 이 자본을 다시 교육, 산업, 사회 인프라에 투자하여 경제발전의 선순환고리를 구축했다. 학교와 병원을 시작으로 수백km의 고속도로, 전선, 공항, 항구, 발전소, 은행, 호텔 등이 지어졌다. '인도 루피'에서 벗어나 '오만 리알'이라는 새로운 화폐를 만들어졌고, 노예제가 폐지되었다.
평화와 조화를 중시하며 대내적으로는 종교, 인종, 국가에 따른 차별을 금지했다. 국왕이 앞장서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교회, 성당, 힌두교 사원 건설을 지원한다. 대외적으로는 철저히 실리-중립외교를 표방하고 중동의 강자인 사우디-이란간 균형을 유지하였다. 그 결과, 오만은 중동국가에서 드물게 종교갈등과 테러에서 자유로운 국가가 된다.
이처럼 술탄 카부스의 통치아래 오만은 불과 40여년만에 국가발전과 사회안정을 이루어냈다. 병원과 대학은 수백개로 늘어났고, 노예제도가 폐지되었고, 국민들은 부유해졌고, 여성도 대학에 다닐 수있게 되었으며, 어업에 종사하던 국민들은 다양한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탈석유 시대에 발맞추어 오만은 'Oman Vision 2040' 등 산업 다각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오만의 발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1970년을 기점으로 변화가 너무 드라마틱하여, 절대군주 1인의 의지로 이루어낸 개혁과 발전이라기엔 믿어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독재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뇌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현지 주재원, 가이드, 외교관에게 크로스체크를 해보았는데 어느정도의 명과 암이 있을 수는 있지만 실제로 술탄 카부스에 대한 국민들의 신망은 상당히 두텁다고 한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오일머니에 의존한 경제발전이라는 점, 왕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금지되어 있다는 점, 언론의 자유가 제한적이라는 점, 모든 권력이 국왕에게 몰려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하지만 오일머니를 왕실과 군부를 위해서만 쓰는 독재자들과 비교해보면 적어도 술탄 카부스의 지도력이 국민을 향해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무능한 아버지를 쿠데타로 몰아내고 국가발전을 이루어낸 왕자의 영화같은 이야기처럼 오만에서의 하루하루는 비현실적으로 평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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